전체 글29 이순신 장군의 모든이야기 이순신 장군(1545-1598)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고 업적도 많은 사람이다. 이순신 장군은 32세의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런데 불의나 억울함에 탑 협하지 않는 강한 성격 탓에 뒤늦게 승진하고 누명을 쓰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이순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순신의 어린 시절 이순신은 1545년 3월 8일(음력) 서울 건천동(현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이순신의 부모는 그와 그의 형제들의 이름을 중국 고대 삼황오제 중 복희 씨와 요, 순, 우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신"자는 돌림자라 큰 의미를 두진 않았지만 부모가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까닭은 성군을 섬길 훌륭한 신하로 만들고 싶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2022. 5. 18. 신사임당의 다른얼굴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며 시, 그림, 그리고 글쓰기에 유능한 종합 예술가이다. 신사임당의 어머니는 친정에 살면서 비교적 자녀들을 자유롭게 교육할 수 있었고 신사임당 본인도 남편의 도움으로 타고난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삶을 개척한 조선 여성인 신사임당에 대해 알아보자. 그녀의 일생 신사임당은 1504년(연산군 10년) 강원도 강릉시 북평촌(현 강릉시 죽헌동)에서 신명화와 용인 이씨의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신사임당이 태어난 강릉시 북평촌은 병풍이 쳐 있는 듯한 대관령이 서쪽으로 자리 잡고 있고 넓고 푸른 동해바다가 동쪽에 펼쳐져 있어서 동쪽으로 푸른 동해가 퍼져 있는 곳으로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신명화는 .. 2022. 5. 12. 한명회 계유정난의 설계자 한명회(1415-1487)는 조선 초 계유정난의 설계자이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야심을 감추고 있던 수양대군에게 한명회는 날개를 달아준 존재였다. 또한 한명회는 예종과 성종의 장인이기도 하고, 당대 권력의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다. 드라마에서도 많이 소개됐던 한명회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보도록 해보자. "내 손안에 있소이다" 드라마 속 명대사인 "내 손안에 있소이다"라는 대사는 실록에서도 확인되는 기록이다. 세조실록 25권에는 한명회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한명회가 주상의 신임하는 바가 되어 팔도의 군사를 통솔하고 형벌과 상 주는 것이 손안에 있었다" 이렇게 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영향력이 큰 정치가이지 않을 수 없다. 한명회는 태어나기를 칠삭둥이로 태어났고, 배에 별 모양.. 2022. 5. 11. 허준 동의보감 조선시대의 의학서인 허준의 동의보감은 국보 제319호로 허준에 의해 1610년(광해군 2)에 완성되었다. , , ,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의학책으로 소개되어 여러 차례 번역되었다. 2009년 7월 31일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소개 허준이 완성한 동의보감은 25권 25 책으로 1610년(광해군 2)에 완성되었으며, 1613년 내의원 개주갑인자 목판으로 처음 간행되었다. 동의보감은 1596년(선조 29) 태의 허준이 이명원, 양예수, 정예남, 김응탁 등과 함께 편찬하였으나 정유재란 때문에 중단되어 선조가 허준에게 500여 권의 문서를 제출하도록 하였다. 1610년 마침내 허준이 완성하자, 선조가 즉시 내의원에게 널리 보급할 것을 명하였다. 이 책의 제목인 .. 2022. 5. 10. 다산 정약용 조선의 다빈치 정약용은 조선 후기에 경세유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를 저술한 유학자이자 실학자이다. 그는 1762년(영조 38)에 태어나 1836년(헌종 2)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인 집안 출신으로 정조 때 관료로 일했고 과학자로서 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가톨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유배 생활 오랫동안 해야만 했다. 정약용 생애 정약용은 1762년 경기도 광주군 마현에서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마현은 한강 상류에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정약용은 어린 시절부터 그의 지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는 4세 때 이미 천자를 익혔고, 7세 때 한시를 썼으며, 10세 이전에 자신의 시를 편찬하였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았던 약용의 오른쪽 눈썹에 새겨진 자국과 눈썹.. 2022. 5. 6. 팔만대장경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은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 팔만대장경을 말한다. 정식 명칭은 '해인사 대장경판', '재조대장경'이다. 판수가 8만 1258쪽에 달한다고 해서 팔만대장경이라 불린다. 고려 팔만대장경은 13세기 국가가 부처의 신력으로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기를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국보 32호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2007년 등재됐다. 제작과정 고려는 1232년(고종 19) 몽골의 침입으로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이후 대장경을 만들기로 하고, 1236년 강화도 선원사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남해에는 분사도감을 설치하여 조판을 담당하였다. 화엄종의 승려인 천기와 수기는 경전을 수집하고 정정을 담당하였다. 팔만대장경의 구성은 1238년(고종 25년)부터 1247년(고종 34년) 사.. 2022. 4. 29. 해인사 장경판전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상남도 합천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는 13세기에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팔만대장경을 500년 이상 보관해 목조건물이 바로 장경 파전이다. 장경판전은 1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목판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장경판전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만든 대장경판 8만 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첫 번째 건물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세조 3년(1457)에 중건되었고, 성종 19년(1488)에 왕실의 지원을 받아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산속 깊은 곳에 있어 임진왜란으로 훼손되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 2022. 4. 28.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은 통일신라 문무왕 때 축조한 장주성(672)의 옛 터를 활용해 인조 4년(1626)에 대대적으로 축성되었다.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25㎞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방어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평균 고도가 480m 이상인 유역이다. 산꼭대기에 도시가 들어설 정도로 넓이가 12㎞에 달해 조선 왕실이 백성들과 함께 대피하기에 안전한 곳이었다. 남한산성 역사 이미 조선 초기부터 남한산성은 중요한 전략 기지로 논의되어 왔다.태종대 때 남한산성의 수축 문제가 제기되어 왕권의 안정을 이뤘고, 이후 세종대는 강화 교동 산성과 함께 풍년을 기다리도록 했으나 수축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이후 임진왜란 직후인 선조 36년(1603년) 2월에 수축 문제가 다시 논의되었고, 광해군 13년(1621년)에 일부 수축.. 2022. 4. 27. 이전 1 2 3 4 다음